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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인 인물 열전] '석유왕' 록펠러(Rockefeller),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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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이슈

[기업인 인물 열전] '석유왕' 록펠러(Rockefeller), 인류 역사상 최고의 부자

'검은 황금' 석유산업 독점 통해... 약 4090억 달러(498조원) 벌어들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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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왕'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

 

[블록워치 최종원 경제부장] 인류가 찬란한 현대 문명을 이룩하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한 물질은 무엇일까? 현대 문명은 흔히 '석유 문명'이라는 단어로 대체될만큼, 석유가 이룩한 문명은 현대 사회의 전부로 여겨지고 있다.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진주만 공습을 감행한 이유도 미국의 '석유 제한' 조치 때문이라는 것이 유력한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석유때문에 중동 국가들은 수많은 전쟁을 치뤘고, 베네수엘라에서는 석유 하나가 나라를 먹여살리거나 나라의 경제를 위태롭게 하기도 한다.


세계 석유 시장을 홀로 지배했던 사람이 있다. 그는 '철강왕' 카네기와 같이 '석유왕'이라는 별명을 가진 존 데이비슨 록펠러(John Davison Rockefeller)이다. 흔히 '석유왕 록펠러'로 많이 언급된다.


록펠러는 1837년 7월 8일 미국 뉴욕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집을 자주 비우며 바람을 피는 난봉꾼이었고, 좋지 않은 쪽으로 장사를 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용돈을 주는 대신에 파리를 잡으면 3센트, 쥐를 잡으면 5센트씩 주는 방식으로 록펠러에게 용돈을 줬고, 어머니의 직장에서 일을 하게 하는 식으로 록펠러에게 노동을 몸소 체험하게 했다.


그의 아버지는 그에게 철저하게 경제관념에 대해 교육시켰다. 그는 돈을 록펠러에게 헛되이 주지 않았는데, 돈을 빌려주면서 이자를 받았고 심지어 집세도 따로 받았다. 그는 록펠러에게 "아무도 믿지 마라. 아버지인 자신 조차도"라고 할 정도로 혹독하게 교육시켰다.

 

록펠러는 1855년에 고등학교 졸업시험을 앞두고 학교를 돌연 자퇴했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그가 처음으로 다닌 직장은 휴잇 & 터틀사였는데 경리업무를 도맡아 하였다.

 

그는 직장을 3년 만에 그만두고 은행에서 큰 돈을 빌리는 위험을 감수하면서 사업을 시작했다. 결과적으로 수입률이 이자율보다 높아 실적을 올리는 데 성공했고, 남북전쟁의 영향을 받아 더욱 사업을 확장시킨다.

 

그러다가 미국에서 최초의 유전이 발견되면서 그의 인생이 180도 달라지게 된다. 그가 살던 클리블랜드에는 많은 양의 석유가 매장되어 있었는데, 당시의 '철도왕'이었던 밴더빌트는 석유 운송을 철도로 장악할 계획을 하였다. 록펠러는 밴더빌트의 철도 인프라를 바탕으로 석유 산업을 빠르게 확장시켰다.


1863년 록펠러는 동업자인 클라크, 앤드루스와 함께 클리블랜드에서 정유사업을 시작했다. 회사의 이름은 '스탠더드오일'이었고 클라크는 2년 만에 지분을 록펠러에게 양도하면서 회사를 떠났다. 그 대신 헨리 M. 플래글러와 사업을 꾸려나가게 되었다.

 

이 후 그들은 클리블랜드에 최대의 정유공장을 세웠고, 1880년에는 미국에서 생산되는 석유 90∼95%의 정유를 도맡으며 경쟁사들보다 앞서나갔다. 그 이후에는 공격적인 M&A(인수 및 합병)를 통해 석유의 생산·정유·판매에 관여하던 계열사들을 스탠더드오일트러스트로 통합시켰다.


그는 미국의 석유산업을 독점하며 무자비하게 사업을 확장시켰다. 이를 위해 그는 경쟁자들을 철저하게 밟아나갔다. 갤런당 30센트 하던 석유 가격을 갤런당 1/5 가격인 6센트로 줄여버리고 독점하고 있는 동안 이 가격을 절대 올리지 않았다. 이는 경쟁기업의 진입을 방해하여 독점을 할 수 있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

 

그는 43세의 나이로 미국 최고부자 반열에 올랐으며, 그가 모은 재산을 현재의 가치로 따지면 약 4090억 달러(498조원)에 달했다. 그는 노동운동을 탄압하기 위해 러들로 학살을 저지르는 등 어두운 면이 많았고, 록펠러 재단을 설립해 자선사업에 힘을 쓰기도 하였다.

 

이러한 점 때문에 록펠러를 마냥 '악마'라고 평가할 수 없다는 입장과 그는 돈을 벌기 위한 '악마'에 불과하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그가 독점과 무자비한 탄압을 통해 악덕 기업의 표본을 보여주었지만, 그때 당시에는 윤리경영이라는 이념이 확실하게 자리잡지 못했고 그가 행한 자선사업 또한 규모가 매우 방대했다.

 

그는 97세의 나이로 눈을 감을 때까지 장수했고 아직까지도 미국 사회에 큰 영향력을 끼치는 인물이 되었다. 오늘날에도 문제가 되는 정경유착, 무자비한 M&A, 문어발식 회사 확장 등 록펠러는 돈을 벌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그가 그저 '악마'에 불과한 인물인지, 배워야 할 점이 많은 '인물'인지에 대해서 첨예한 대립이 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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